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묜 부됸니 (문단 편집) === [[러시아 내전]] 시기 === [[파일:부됸늬적백내전기.jpg]] 카자크 기병 삘이 나는 사진. 붉은 군대 초창기 때 촬영된 모습이다. 오른쪽부터 [[클리멘트 보로실로프|보로실로프]], 부됸니, [[세묜 티모셴코|티모셴코]]. 부됸니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새롭게 구성된 붉은 군대에 가담하여 제1기병군 사령관에 임명되었고, 곧 내전에서 큰 활약을 했다. 대표적인 활약상으로는 모스크바 공세가 실패한 데니킨의 남러시아군에 막타를 넣으며 남러시아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. 이 때 [[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|우크라이나]]를 원조한 [[폴란드 제2공화국|폴란드]]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붉은 군대를 몰아내고 1920년 5월에 키예프를 해방시키자, 부됸니의 부대는 이에 맞서 싸웠다. 부됸니는 처음에는 승기를 타고 폴란드군을 격파하면서 폴란드 영내까지 진입했지만, [[크라쿠프]]에서 대패하고[* 코마루프(Komarow) 전투. 사실 이 전투는 부됸니 입장에서는 [[흑역사]]급 전투이다. 소련군 '''1만 7,500명'''과 폴란드군 '''1천 7백명'''이 싸워서 소련군이 '''전사자 4천을 내고 대패'''했다, 그나마 폴란드군 숫자가 워낙 적어서 [[전멸]]은 피했으니 다행.] 다시 소련 영내로 후퇴하였다. 이 [[소비에트-폴란드 전쟁]]은 대체로 기병으로 승부가 갈렸으며, 이 때문에 양국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기병에 집착하게 되는 나쁜 영향을 끼쳤다. 부됸니도 [[소련]]이 공업화를 이루고[* 그나마 이것도 러시아 내전 이후 자본주의 국가에 포위되어 있다는 소련의 공포심이 낳은 결과였다. 당시 소련은 경공업이고 농업이고 싸그리 팽개치고 중공업에 모든 능력을 몰빵했고, 그 결과는 소련 중공업의 기형적인 발전과 [[홀로도모르]]라는 대참사였다.] 전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도 기병을 고집하며 [[미하일 투하쳅스키|투하쳅스키]]의 군 기계화를 강하게 반대했다. 어쨌든 부됸니가 이끄는 붉은 군대 제1기병군의 명성은 당시 신화적으로 알려져 있으며, [[미하일 숄로호프]]가 쓴 [[노벨문학상]] 수상작인 [[소설]] '고요한 돈강'에도 잘 묘사된다. 그리고 [[부됸니 행진곡|부됸니를 우상화하는 군가]]들이 작곡되기도 했고, 붉은 군대가 쓰던 뾰족모자는 그의 이름이 붙어 부됸노프카라고 불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